비트코인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된 수입원은 없습니다. 이는 저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한국에서 후원이 아니라 비트코인 관련 업으로 지속 가능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이 일을 합니다. 돈도 잘 안 되는 일을 왜 이렇게 붙잡고 있을까요?
겉으로는 다 비슷해 보입니다. 비트코인에 기여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을 알았으면 좋겠다. 비트코인 스탠다드가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몇 달 동안 가까이서 보니, 보이는 모습과 실제 동기는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트코인에 가장 진심이었으나 사업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방향이 틀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가장 우월한 돈이라고 믿고, 언젠가 시장이 더 커질 때를 기다리며 깃발을 꽂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힘을 이용해 더 나은 금융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 시스템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고 보고, 비트코인을 통해 다른 세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가 비슷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그 동기와 그것들의 우선순위는 각자 다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결국 각자가 바라는 '비트코인의 미래'가 무엇인지를 드러냅니다.
비트코인 스탠다드를 위해서 모두의 힘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비트코인 스탠다드가 오려면 결국 시장이 커져야 합니다. 사람도 많아져야 하고, 제품도 나와야 하고, 서비스도 생겨야 합니다. 비트코인을 설명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팔아보려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생활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 "단순히 비트코인 시장이 커지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비트코인 백서에 적혀 있듯이, "제3자가 필요없는 전자화폐"로서 작동하길 원합니다. 비트코인이 왜곡되어 있는 기존 경제질서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더 나은 금융적 토대 위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비트코인 백서에서 말하는 요건들이 지켜져야 합니다.
- 신뢰할 제3자를 없애는 것
- 누군가를 믿는 대신 직접 검증할 수 있게 하는 것
- 누구의 허락 없이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
하지만 이것들은 프로토콜상의 설계도일 뿐, 현실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다루는 것과는 격차가 큽니다. 모든 사람이 타인을 믿지 않고 트랜잭션 혹은 기기를 완벽하게 검증할 수 있나요? 모든 사람이 누구의 도움없이 셀프커스터디를 할 수 있나요? 모든 사람이 풀노드와 채굴기를 돌려서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나요?
결국에는 어딘가 신뢰를 해야 하는 지점이 필요하며, 완벽한 무신뢰의 시스템은 허상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능한 신뢰를 덜 하고, 단일 취약점을 방지하여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부분을 사람들이 생각보다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지점은 미묘해서 정확히 무엇이 문제고 답이 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비트코인 정신이 무너지는 방식은 생각보다 노골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알트코인이나 웹3처럼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애매한 것들이 많습니다.

거래소에 비트코인을 맡겨두는 것
중앙화된 플랫폼에서만 비트코인 정보를 얻는 것
비트코인을 적립식 투자자산으로만 대하는 것
비트코인의 화폐로 사용보다는 가격 상승에만 노출되는 것
이것들을 전부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거래소는 입문자에게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적립식 투자는 비트코인을 처음 접하는 좋은 방식일 수 있습니다. 중앙화된 콘텐츠도 누군가에게는 공부의 출발점이 됩니다. 편한 서비스가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에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입구가 아니라 최종 상태가 될 때입니다.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는 것은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거래소에만 맡긴다면, 그는 비트코인을 가진 것이 아니라 비트코인 가격에 노출된 것에 가깝습니다. 비트코인 콘텐츠를 보는 것도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특정 인물이나 플랫폼의 해석에만 의존한다면, 비트코인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설명을 믿는 것입니다. 적립식 투자도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오직 오를 자산으로만 본다면, 비트코인은 새로운 화폐가 아니라 또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소비될 뿐입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이 커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은 가격이 오르면서 확산될 수도 있지만, 사용 방식에서는 질 수도 있습니다.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산으로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주목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자산으로 주목받는 것과 화폐로 쓰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비트코인이 진짜 화폐가 되려면, 자산의 단계를 넘어 생활과 거래의 단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거래소에 비트코인을 맡깁니다. 직접 지갑을 쓰는 일은 어렵습니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아직 낯설고, 결제 경험도 매끄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트코인은 아직 돈이라기보다는 투자 상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사업화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모순을 안고 가는 일입니다. 비트코인은 중개자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사업은 보통 중개와 서비스에서 돈을 법니다. 비트코인은 자기 주권을 말하는데, 대중은 편리한 서비스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면 유혹이 생깁니다. 알트코인, 웹3, 토큰, 투자 유치, 과장된 홍보. 그쪽으로 가면 당장은 설명하기 쉽습니다. 돈도 더 빨리 붙을 수 있습니다. 대중에게도 더 화려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 길로 가는 순간, 비트코인에 본질에서 멀어집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언젠가 비트코인이 알아서 퍼지겠지"라고 기다리는 것도 답은 아닙니다. 그건 신념이라기보다 방치입니다. 후원만으로도 한계가 있습니다. 후원은 감사한 일이지만 후원에 의존하게 되면 시장과 직접 부딪히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에 돈을 내는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어디에서 포기하는지 더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확실한 아웃풋을 내지 않아도 어느정도 일을 한다면 후원은 지속되니까요.
결국 필요한 것은 비트코인의 정신을 팔지 않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드는 일입니다.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자 상품으로 소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쓰고 이해하고 보관하고 연결될 수 있게 만드는 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제품과 경험을 만드는 일. 어딘가에 답이 있을 겁니다. 다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